조용술 목사

192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한신대를 졸업하고 전북 옥구, 익산, 군산 등지에서 목회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신장, 민족화해와 통일을 향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오랜 날을 군산복음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민족자주·토착교단인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과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재단 이사장을 맡아 교단을 이끌었다. 1990년 베를린 범민족연합남북회의 실무회담의 남측대표로 참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목회를 은퇴한 이후에도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기독교농민회 이사장, 한국기독교원로회의 의장 등과 한반도통일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전국연합 상임고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 상임고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온후하면서 강단있는 인품으로 많은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조용술 목사 연보





나를 부르는 말씀을 주셨으니 노래하며 가겠나이다
- 조용술 목사님 영전에 효림
당신이 늙은 양치기의 이름을 불렀을 때
군산 앞 바다는 가을에 젖어 있었다.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길에는 말씀이 낙엽처럼 깔려 있었다.
이제 올라 오너라.
맑게 갠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치기는 말씀을 읽고 눈물보다는 찬송을 조용히 불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평생토록 저 낮은 곳에서
낙엽처럼 뒹굴며 살았나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수많은 골짜기를 헤매며 다녔나이다.
그것이 사랑이었으므로.
그것이 당신의 말씀이었으므로.
이제 당신이 나를 부르는 말씀을 주셨으니 노래하며 가겠나이다.
노래는 길을 열었다.
늙은 양치기는 길을 떠나며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철조망에 갇힌 양떼들.
철조망에 몸을 찢기며
슬피 우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철조망을 걷어내기 위하여
스스로 철조망에 갇혀
함께 피를 흘린 적도 있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직도 철조망 속의 양떼를 구원하지 못했나이다.
길 위에 무릎을 꿇었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골고다 언덕을 무릎으로 걸어간다.
길섶에 구절초며 코스모스 피어 있었고
기도는 가시처럼 아팠다.
(2004.11.17)
